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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저모 | 내포 가야산 김선우 북콘서트 후기

등록일 : | 2016-06-24 09:45:09

치유와 희망의 숲을 가꾸는 내포문화숲길 가족들에게 감사를 전하며...


내포 가야산 김선우 북콘서트 후기

책 - 김선우 시인 <발원, 요석 그리고 원효>


◾ 표지판이 없는 작은 길을 따라 들어가 풀밭에 주차를 한후 그늘진 오솔길을 따라 원효암으로 간다. 3키로 1시간 30분이면 되는 길, 솔잎을 밟으며 작은 길을 따라 한 줄로 걸어간다. 계너미, 옥병계 등 작은 안내판을 여러개 지나 아담한 그늘진 원효암터에 도착했다. 멀리 대치리 들판 너머, 날이 맑으면 보인다는 백제부흥군 최후 전투현장인 임존성을 감추고 있는 구름이 보인다.


◾ 작은샘이 있는 원효암 아래터에서 점심을 옹기종기 나누고, 원효굴과 연결돼 있는 윗터에서 김선우 시인을 중심으로 마주앉아 원효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무 그늘아래 시원한 바람처럼 요석과 원효가 머리를 맑게하였다.

- 해골바가지 원효와 첫사랑에 빠지다 : 18세, 가장 좋아했던 둘째언니가 수덕사 견성암으로 출가하면서 남긴 서적을 뒤적이다 고승전을 통해 원효를 만나다. 해골바가지-죽음과 절망속에서 희망을 발견하고 유학을 포기하고 민중속으로 되돌아간 위대한 남자를 만나다. 스케일이 큰 원효를 발견하고 첫사랑에 빠지다.

- 파계 : 그후 삼국유사, 삼국사기를 보면서 노래로 수작을 부려 요석궁에서 하룻밤을 자고 설총이라는 자식을 낳은 원효. 첫사랑이였던 멋진 원효를 제대로 대변하고 싶었다. 오랜시간이 지나 조계종 화쟁위원회 제안으로 불교신문에 멋진 원효를 변론하게 되었다.

- 전쟁반대, 평화주의자. 중국 뿐만아니라 산스크리트어로 인도에까지 알려졌다는 원효. 요즘 한류 아이돌 그 이상으로 영향을 끼친 원효. 바로 우리 스스로 부처임을 자각하고 부처로 살아야한다고 가르친 원효.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


◾ 2시간 가까이 <발원>에 대해서, 그리고 몇사람의 질문을 주고받으며 원효에 대한 이야기가 무르익었다. 원효가 해골바가지 물을 마셨다는 원효암과 원효굴 앞에서.... 한시간 만에 산을 내려와 반절 가까이 먼저 떠나고 남은 25명과 김선우의 소감나누기가 또다시 한시간 가까이 진행되었다.


◾ <소감> 김선우와 원효 그리고 나와 우리

- 김선우 : 시인으로 막연히 인식되었던 그를 2010년 촛불시위를 배경으로 한 소설 <캔들 플라워>을 통해 김선우를 만났다. 그런데 별로 재미없었다, 읽기 어려웠다. 2015년 <발원>을 통해 두 번째 김선우 소설을 접했다. 재미있었다. 김선우와 원효가 나에게 다가왔다. 시절인연인가?

- 원효 : 불자지만 교과서에 나오는 누구나 알고 있는 수준임이 부끄럽다. <발원>을 통해 원효의 삶과 사상이 구체적으로 다가왔다. 서울 한강다리 32개중의 하나가 원효스님의 이름을 빌린 ‘원효대교’, 1400년을 뛰어넘어 남과 북을 잇는 한강다리 이름에 오를 정도로 우리에게 살아있는 원효. 그가 21세기 G2시대, 한반도의 새로운 위기가 다가오는 시절에 우리 앞에 나타나 춤추기 시작했다.

- 김선우와 원효 : 한숨도 자지않고 4시간을 넘게 달려와 산위에까지 올라와 원효를 이야기하는 사람. 김선우는 원효의 화신이다. 그런 김선우를 여기까지 초대한 ‘내포문화숲길’은 아미타림이다. 치유와 희망의 공간으로 커가고 있는 내포에 김선우는 기꺼이 응하여 원효로서 이야기한다. 너, 나 우리는 부처고 지금당장 부처로 살아야 한다.

- 산에서 어느 여자분이 말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달라진게 없는 것 같아 답답하고 분하다고. 하지만 조금은 다르지 않을까. 지금은 수많은 원효, 수많은 아미타림이 있다. 그것도 남한만이 아니라 지구촌 곳곳에. 바로 승복을 벗고 민중속으로 들어간 원효가 있었기에. 그래서 우리는 희망을 갖고 서로 격려하고 나누면서 희망을 만들어가야 한다. 바로 이 자리, 참석한 우리 모두가 희망이고 원효이다.


◾ 마지막 김선우 시인의 소감 그리고 시낭송을 부탁하다.

- 세월호 2주기 문화제에서 김선우 시인이 낭송했던 시, 올해 나온 시집 <녹턴>에 담겨있는 시다.

- 사건 몇 일후 모 신문사에서 청탁이 왔다. 정신을 추슬러 써야했다. 새벽, 끝없이 눈물을 흘리며 시를 썼다.


봄의 이름을 찾지 못하고 있다

믿기지 않았다. 사고 소식이 들려온 그 아침만 해도

구조될 줄 알았다. 어디 먼 망망한 대양도 아니고

여기는 코앞의 우리 바다.

어리고 푸른 봄들이 눈앞에서 차갑게 식어가는 동안

생명을 보듬을 진심도 능력도 없는 자들이

사방에서 자동인형처럼 말한다.

가만히 있으라, 시키는 대로 해라, 지시를 기다려라.

가만히 기다린 봄이 얼어붙은 시신으로 올라오고 있다.

욕되고 부끄럽다, 이 참담한 땅의 어른이라는 것이.

만족을 모르는 자본과 가식에 찌든 권력,

가슴의 소리를 듣지 못하는 무능과 오만이 참혹하다.

미안하다, 반성 없이 미쳐가는 얼음 나라,

너희가 못 쉬는 숨을 여기서 쉰다.

너희가 못 먹는 밥을 여기서 먹는다.

환멸과 분노 사이에서 울움이 터지다가

길 잃은 울음을 그러모아 다시 생각한다.

기억하겠다, 너희가 못 피운 꽃을.

잊지 않겠다, 이 욕됨과 슬픔을.

환멸에 기울어 무능한 땅을 냉담하기엔

이 땅에서 살아남은 어른들의 죄가 너무 크다.

너희에게 갚아야 할 숙제가 너무 많다.

마지막까지 너희는 이 땅의 어른들을 향해

사랑한다, 사랑한다고 말한다.

차갑게 식은 봄을 안고 잿더미가 된 가슴으로 운다.

잠들지 마라, 부디 친구들과 손잡고 있어라.

살아 있어라, 산 자들이 숙제를 다할 때까지.


김선우, 「봄의 이름을 찾지 못하고 있다」, 『녹턴』(문학과지성사, 2016년)


- 광화문 세월호 문화제에서 울지 않겠다, 다짐하고 다짐하며 울지 않고 낭송했는데, 여기 내포에 와서 울어버리다니. 아이....


◾ 새벽5시에 잠을 자고 오후 1시에 일어나는 일과라서 오늘 한숨도 자지 않고 달려와, 저렇게 이쁜 얼굴과 맑은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고 모두를 울리는 시낭송까지 하였다. 춘천으로 가는 길이 막힌다는 소식에 우리가 하룻밤을 지새울 ‘가야산방’(내포 교육국장 집) 작은방에서 잠깐 눈을 부치고 가기로 하다.


◾ 옆마을에서 하루종일 마늘과 감자를 캐주는 일을 도우러간 ‘가야산방’ 여주인이 오셨다. 고기를 구울 숯불을 피우고 자색 감자를 씻어 솥에 삶았다. 잠깐 눈을 부친 김선우, 가야산방 마루턱에 앉으니 마음이 편안해 진걸까? 감자와 숯불 연기가 마음을 동하게 한 것일까? 마당 정자에 펼쳐진 밥상에 앉아 또 이야기 꽃을 피웠다.

- 70년 강릉에서 태어났지만, 7살에 학교에 들어가 학번은 88이란다. 졸업직후 희망이 없던 세상을 등지려하기도 했었다. 그리고 깊은 내면의 나를 찾았다. 글쟁이로 희망을 노래하기로 하다. 88학번이라는 말에 돌87인 사람들이 더욱 친근하게 김선우가 느껴진다. 80년 90년 그리고 지금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지, 이곳에 어떻 인연으로 왔는지 캄캄한 밤이 깊어지도록 이야기를 나누었다.

늦은밤 김선우는 춘천으로 홀로 떠나고 남은 이들은 밝은 달밤 아래 기타 연주에 맞춰 노래 몇곡을 부르고 잠을 청했다. 원효가 꿈을 꾸었듯이, 자유와 행복, 이토록 행복한 느낌을 오래도록 많은 이들과 나눌 것을 발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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